언론보도
2024-08-19
한 홍콩 변호사님으로부터 한국의 '사전의료지시'(Medical Directive) 제도는 어떠한 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홍콩의 사전 의료지시제도의 제도화를 연구 중이시라고 한다. 이는 환자가 의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때를 대비해 관련 결정을 미리 작성하는 것으로 연명치료중단 의사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즉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제도로 안락사의 일종인 것이다.
안락사는 크게 네 종류로 구별된다. 한 축에는 적극적, 소극적, 다른 축에는 타인, 자신이 있다. 즉, 적극적으로 타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소극적으로 타인이, 소극적으로 자신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최초 시행되어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나 '타인에 의한 소극적 안락사'에 한하여 허용되고 그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한 상태인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하여 임종과정의 기간만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조치를 중단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 경우에도 환자가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즉, 위 사전의료지시서와 같은 것이다)를 담당 기관에 등록하거나 환자의 가족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요건을 다 충족하기는 까다로우면서도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기 모호한 영역이 많다. 가령, 현실에서는 어떤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단순히 '말기환자'인지에 대한 판단이 쟁점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2022년 서울대병원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6.3%가 '안락사'에 찬성하였다고 한다. 찬성의 구체적인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 30.8%,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26.0%, '고통의 경감' 20.6%, '가족 고통과 부담' 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 4.6%이다. 또한 2023년 서울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81%가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반대는 6.7%에 불과하였다. 찬성의 이유는 '자기 결정권 보장' 29.0%, '병으로 인한 고통 경감' 27.7%, '편안한 임종' 23.1%, '가족의 정신적 · 경제적 부담 경감' 18.0%, '사회적 부담 경감' 2.1%였다.
이와 같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론은 현재 안락사에 대해 긍정적이다. 물론 설문조사의 표본, 신뢰도 등에 따라 실제 여론은 이와 다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여론은 서울대병원의 설문조사의 찬성의 이유가 자기결정권보다 '남은 삶의 무의미'가 높은 점에서 안락사 논의의 본질인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안락한 죽음에 대한 결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도입된 2018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이미 총 92만 4,271건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등록된 점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안락사 허용 범위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될 것이다. 다만 그 한계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지난 7월에는 '조력존엄사법'(제정안)이 발의되었다. 말기 환자가 죽을 시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법이다. 기존의 연명치료중단 제도보다 환자의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넓히려는 시도이다.
물론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안락사 또는 존엄사의 제도화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자신의 진정한 의사가 아닐 수도 있고, 의료비 부족이나 가족의 눈치로 인한 경제적 · 심리적 압박에 의해 안락사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으며, 그 외 제도를 남용 · 악용할 수도 있다는 여러 문제점이 남아있다. 이제 안락사 허부 논의는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선택권이 존중되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의 완결에 대한 선택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존중'이란 무엇일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다.
[기사전문보기] - [칼럼] 안락한 죽음의 방향(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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