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있다가 공소시효가 지나고 귀국하면 처벌 받지 않을까?

범죄 해당 사실 알고도 귀국 안 했으면 ‘공소시효 정지’

해외 거주자가 국내법을 어겨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도 귀국하지 않았다면 그 기간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대법원 2024. 8. 31. 선고 2024도8683 판결)

대법원 형사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8월 31일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벌금 12억 5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주로 홍콩에서 활동하는 사업가 A씨는 스위스에 있는 금융회사에 개설된 자신 명의 해외금융계좌 잔액이 2016년 2월 29일 기준 220억 원 가량이었음에도, 그 해외금융계좌정보를 2017년 6월 30일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제조세조정법)에 따르면, 해외금융회사에 개설된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중에서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의 보유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해외금융계좌정보를 다음 연도 6월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의무 위반금액이 50억 원을 초과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신고의무 위반금액의 100분의 20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A씨의 금융계좌를 조사한 서울지방국세청은 A씨의 세무대리인을 통해 20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사전통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A씨는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공소시효 기산일인 2017년 7월 1일부터 5년이 지난 2022년 7월 28일에 귀국했습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A씨의 신고의무 위반 금액이 약 220억 원으로 적지 않은 액수라는 점을 들어 벌금 25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252조(시효의 기산점)

① 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

제253조 (시효의 정지와 효력)

① 시효는 공소의 제기로 진행이 정지되고 공소기각 또는 관할위반의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진행한다.

③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체류한 것으로 본 항소심의 판결

항소심에서는 A씨의 공소시효 완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A씨는 홍콩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어 국제조세조정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음을 알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었을 뿐,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며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세무대리인이 국세청의 자료 제출 요구서와 과태료부과 사전통지를 대리 수령했고, A씨는 세무대리인을 통해 이 사건 위반행위가 문제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여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A씨가 위반행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종합소득세 32억 원을 성실히 납부했다는 점을 고려해 벌금을 12억 5,000만 원으로 감경했습니다.

관련 형사소송법을 해석한 대법원의 판결

대법원 역시 항소심의 판단을 인정하며 A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벌금형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종전 대법원 판결(2015도5916판결)을 인용하며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이 정한 ‘법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는 범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뿐만 아니라, 범인이 국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서 체류를 계속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해외에 있다고 전부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고,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해외로 출국하거나 범죄를 인식한 시점 이후에 귀국하지 않는 경우에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며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서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범죄를 인지하고도 홍콩에 체류하였으므로,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태로 출국했다면?

수사 단계 피의자가 출국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과 달리, 이미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외국에 나가도 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2년 10월 동업자 2명에게 5억 여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이듬해 미국으로 떠나 국내에 돌아오지 않은 한 사업가에 대한 재판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재판을 무효로 하는 면소 판결을 확정한 바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수사 중인 상황에 적용되는 조항이므로, 재판이 시작된 뒤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채 1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간주한 겁니다.

그러나 지난 1월, 국회에서는 형사 재판 중 해외 도피한 피고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재판 중 도피한 것은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맹점을 활용해 피고인들이 재판 도중 해외로 도피하여 처벌을 피하려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약 관련 사건에서 혐의를 받고 해외로 도피한 뒤 귀국하지 않는 범죄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 국외에 체류하는 것은 오히려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인식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