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2024-06-13
당장의 금전적 부담 없는 집행유예 선호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가치관에 따라 달라져
벌금형 실효성 높이기 위해 '일수 벌금제' 도입 주장
"이거 완전히 잘못됐는데." 최근 부산법원종합청사 형사재판에서 한 피고인이 재판부로부터 벌금형으로 선처를 받자 내뱉은 말이다.
이어 그는 재판부에 "변호사와 상의했을 때 범행을 시인하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것이라고 해서 자백한 것"이라면서 자신에게 벌금형보다 더 중한 형인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떼를 썼다. 집행유예는 벌금형보다 더 중한 형벌이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재판부는 "항소해서 다시 판단을 받아봐라"는 말과 함께 피고인을 돌려보냈다.
이처럼 피고인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집행유예가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와 금전적인 부담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면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전액 일시 납부하는 것이 원칙으로, 당장 금전적인 지출이 발생한다. 반면 집행유예는 금전적인 손실이 없을 뿐더러 징역도 살지 않기 때문에 몸도 자유롭다.
법무법인(유한) 대륜 김동진 변호사는 "벌금형은 당장 돈을 내야 하지만 집행유예는 징역을 장래로 이월시키고 사라지는 리스크라고 (피고인들은) 생각한다"면서 "각자가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 집행유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의 직종은 규정에 따라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직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자영업자의 경우 벌금형보다 집행유예를 훨씬 더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형벌은 ▲벌금형 ▲자격정지 ▲자격상실 ▲유기금고 ▲유기징역 ▲무기금고 ▲무기징역 ▲사형 순으로 무겁다.
이중 법원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집행유예는 유죄의 형을 선고하면서 이를 곧바로 집행하지 않고 일정 기간 그 형의 집행을 미뤄주는 제도로, 형법상 벌금형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또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흔히 '빨간 줄이 그어진다'는 표현처럼 범죄기록이 남으며, 집행유예 기간 중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또 서게 된다면 새로 선고받은 형에 이전에 집행이 유예됐던 형까지 함께 복역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거나, 집행유예로 빨간 줄이 그여도 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집행유예를 받아도 당장의 피해가 없기 때문에 이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불합리함에 대해 전문가들은 벌금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피고인들의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 벌금을 책정하는 '일수 벌금제' 도입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총액 벌금제'를 취하고 있다. 이 제도는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피고인에게 일정 금액을 총액 형태로 부과하는 벌금제다. 일수 벌금제는 범죄자의 하루 수입을 단위로 벌금을 책정하는 제도다. 경제적 부담 능력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는 취지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경규 박사는 "법조인들은 벌금형보다 집행유예가 훨씬 무거운 형벌로 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피고인이 느끼기엔 벌금형은 당장 돈을 내야 하는 등 생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집행유예보다 더 꺼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벌금형은 자유를 제한하는 중한 범죄가 아닌 가벼운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생계형 범죄와 같은 가벼운 범죄들에 대해선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총액 벌금제를 취하고 있어 피고인의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 깊게 헤아리지 않는다"며 "이에 벌금형을,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일수 벌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문상담예약접수
법률고민이 있다면 가까운 사무소에서 전문변호사와 상담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