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2024-07-09
전북 전주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사IN〉은 세입자들의 증언과 전세로 나온 부동산 매물을 바탕으로 임대인 곽 아무개씨가 차명 소유한 건물을 추적했다.
전북 전주에서 대규모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은 전세사기 의혹을 제기하며 임차권등기를 비롯한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임대인은 곽 아무개씨. 〈시사IN〉 취재 결과, 현재까지 임대인 곽 아무개씨가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동산은 전주에서만 다세대주택 89세대(건물 6채)이며, 다가구주택 94가구(6동)에 달했다. 〈시사IN〉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임차 세대 가운데 34곳에 이미 임차권등기(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설정돼 있었다. 전북 전주 지역에서 대규모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이재형씨(가명·30)는 2021년 6월 일터와 가까운 전주 완산구 A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전세보증금은 8500만원,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가입이 안 된다고 했다. 등기부등본(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적힌 소유주는 김 아무개씨였지만, 실질적인 임대인 역할은 김씨의 아들인 곽씨가 도맡았다. 곽씨는 “10년 전에 사업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쓸 수 있는) 명의가 어머니밖에 없어서” 모친 명의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재형씨는 전세 계약을 앞두고 공인중개사 김 아무개씨에게 안전한 건물이 맞는지 물었다. 곽씨가 2020년 11월 모친 명의로 7억5000만원에 매입한 건물에는 근저당권 5억3800만원이 설정돼 있었다. 중개사 김씨는 불안해하는 이씨에게 “임대인 곽씨가 사업도 크게 하고 건물 등 부동산이 많으니 보증금 반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다. 이씨뿐만 아니라 중개사 김씨를 통해 곽씨와 계약한 이웃 세입자 6명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이씨 또래의 20~30대 청년이다.
이재형씨가 전세 계약을 맺고 1년9개월이 흘렀다. 전세 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둔 지난해 3월, 이씨는 임대인 곽씨에게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밝혔다. 곽씨도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 임대인 곽씨는 이씨에게 그해 4월 같은 건물에 살던 세입자 조 아무개씨(31)가 임차권등기를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만기일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는 바로 다음 날부터 임차권등기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임차권등기가 설정된 집은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집이라는 의미다. 새로 집을 구하는 세입자 입장에서 꺼릴 수밖에 없다. 2023년 6월 초 임대인 곽씨는 이재형씨에게 “두 달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전주 덕진구에 있는 H 건물을 45억원에 경매 낙찰받았는데, 거기 돈이 묶여 있다. 두 달 후인 2023년 8월쯤 H 건물에서 대출이 나온다’고 설득했다. 이씨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정이 있다고 하니 “두 달만 기다리겠다”라고 답했다.
‘전세금 반환은 문제없다’고 설득했던 공인중개사 김씨가 임대인 곽씨와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시사IN〉에 전한 임대인 곽씨의 설명에 따르면, 중개사 김씨는 곽씨가 소유한 부동산 매물 중 60~70%를 중개한다(〈그림 1〉 참조). H 건물을 경매로 구입한 ‘R 컴퍼니’의 대표이사가 중개사 김씨다. R 컴퍼니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임대인 곽씨의 모친이 이 회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R 컴퍼니’의 대표이사인 중개사 김씨는 〈시사IN〉에 “(곽씨가 임차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하고 상관 없다. 나는 명의를 빌려줬을 뿐이고, 운영은 그분(곽씨)이 한다. 거기(R 컴퍼니)에서 돈 한 푼 받은 적 없다”라고 말했다.
임대인 곽씨는 이재형씨가 전세보증금 반환을 기다리던 2023년 4월, R 컴퍼니 법인 명의로 H 건물을 45억원에 인수했다. 곽씨는 〈시사IN〉에 “원래 나는 임대업과 인테리어업을 하는 사람이다.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 때문에 (전세) 수요자가 줄어버렸다. 그래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전세금을 가지고 150억원짜리 건물을 45억원에 경매 낙찰받은 뒤 리모델링해서 180억원짜리를 만들어놨다. 나는 상환능력이 있다. 전세금 10억~20억원 갚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세입자들과도 자주 소통하고 열에 아홉 명은 매달 (전세금 대출) 이자를 준다”라고 주장한다.
세입자 이재형씨의 이야기는 다르다. 2023년 7월부터 임대인 곽씨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전화 주세요’라는 문자를 7월10일, 7월24일, 7월25일에 걸쳐 반복적으로 남겨야 했다. 전세금을 돌려주기로 한 2023년 8월이 돼도 연락이 어려웠다. 곽씨는 이씨에게 대출이자를 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곽씨가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던 날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재형씨는 계속 연락을 시도한 끝에 2023년 11월11일 임대인 곽씨를 만났다. 곽씨는 그해 12월 말까지 “전세금 8500만원 일체를 즉시 반환하겠다”라는 각서를 썼다. 이씨는 곽씨가 쓴 각서를 믿었다. 그해 12월1일 새로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계약금 260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전세금 반환 일자가 다가오자 또다시 곽씨와 통화가 어려워졌다. ‘전화 주세요(12월4일)’ ‘전화 좀 주세요(12월5일)’ ‘전화 왜 안 주세요?(12월6일)’ 곽씨에게 연락을 남겼다. 12월7일에야 곽씨는 ‘2개월만 연장해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안 돼요. 저 이제 사장님 못 믿어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이씨가 낸 계약금 2600만원도 날아갈 상황이었다. 곽씨는 이재형씨의 전화를 피하는 대신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다’ ‘상중이라 경황이 없다’ ‘이자 납부할 테니 6개월 연장해달라’는 문자만 남겼다. 이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힘들었다. 잠이 안 와서 매일 술을 엄청 마셨다. 그러더니 급성췌장염이 오더라. 정신과에서 우울증을 진단받고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먹으면서 버텼다. 수면제는 한번 먹으니까 끊을 수가 없어서 지금도 먹고 있다.” 더는 참고 기다릴 수 없었던 이씨는 2023년 12월12일 부동산 가압류 접수를 시작으로 전세금반환청구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임대인 곽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 세입자는 이재형씨뿐만이 아니다. 전주 덕진구에 위치한 H 건물 앞에는 종종 곽씨의 세입자들이 찾아온다. H 건물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신 아무개씨는 “어느 날은 20대, 많이 먹어봤자 서른쯤 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가게로 찾아왔다. 사장(임대인 곽씨)이 여기(H 건물) 나오느냐고 물어보더라. 전주대 쪽 원룸에 살다 이사 갈 날짜 맞춰서 다른 곳을 계약했는데 사장이 보증금을 안 빼준다고 했다. 그거를 받아야 자기네가 나가는데 사장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올해 2월22일, 이재형씨가 사는 A 다가구주택에 강제경매 개시가 결정됐다. 2월 말에야 이재형씨도 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걸 알게 됐다. 각 세대 현관문마다 ‘주택 경매 절차 개시’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냐는 이씨의 물음에 임대인 곽씨는 “어차피 3월에 (H 건물에 대한) 대출 나오면 다 정산할 거니 걱정하지 마라. 내일모레 은행에서 대출금액과 시점을 연락 주기로 했다”라면서 오히려 이씨에게 다른 세입자들 집 현관 앞에 붙은 경매통지서까지 모두 수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씨는 다른 세입자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럴 순 없다고 거절했다.
3월에 대출이 나오면 다 정산할 거라며 걱정 말라던 임대인 곽씨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사IN〉 취재 결과, 곽씨는 최근까지 대출받을 은행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곽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제 여러 은행에 접촉을 할 거다. 경매 물건을 보수적으로 보는 전북보다 경기나 서울 쪽에서 (대출)할 거다. (H 건물) 감정가가 110억원 나와서 (대출은) 70억원 정도 (나올 거다)”라고 주장하며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8~9월 중에 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월 중순 이재형씨 건물 세입자들 10명이 모여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전세계약이 종료됐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와 계약기간이 아직 남은 세입자가 섞여 있다. 이씨는 단체 고소도 고려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지금까지는 ‘조금만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부 임차인들은 ‘곽씨는 여러 사업을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사업이 꼬여서 이렇게 된 거니 더 기다려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개사 김씨도 이 지점을 강조하며 곽씨를 변호했다. 중개사 김씨는 〈시사IN〉에 “(소송을 걸어봤자) 정부에서 임차인 보증금 한 푼도 안 내준다. 아직 임대인의 자본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우리가 다 같이 임대인을 살려내야 한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대출이자) 조금이라도 받아놓고 기다리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이재형씨는 다른 세입자들의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가 이해된다고 말했다. “곽씨가 무턱대고 기다려달라는 게 아니라 사정을 설명하니까 나도 처음엔 기다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1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진짜, 엄청 부정했다. 그다음에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우울했다. ‘뭐가 진짜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마지막 단계는, 포기다.”
임대인 곽씨는 “이 사업을 2020년 겨울부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다가구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인테리어를 한 뒤, 매매가보다 비싸게 전세를 내놓는 방식이다. 곽씨는 “인테리어 비용 때문에 월세하고는 안 맞는다. 다 전세다. 우리가 인테리어로 가치를 올려놓은 걸 보고 임차인들이 와서 계약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중개사 김씨가 부동산 플랫폼에 전세로 내놓은 부동산 매물과 세입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곽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건물을 추적했다. 〈시사IN〉 취재 결과, 곽씨는 2020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약 2년 동안 다가구주택 6동과 다세대주택 6동을 구입했다. 세대수로 따지만 도합 183세대에 달한다(〈그림 2〉 참조).
곽씨의 부동산 매입 과정에는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 가장 큰 문제는 차명 매입이다. 곽씨는 이들 주택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어머니 김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추가로 사용했다. “(소유주로 적힌 사람들은) 지인들이다. 취등록세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관리는 다 내가 한다”라는 게 곽씨의 설명이다. 곽씨의 부동산 매물을 중개한 중개사 김씨도 이들 주택이 사실상 곽씨 소유라고 증언했다.
이들 주택 상당수에 이미 임차권등기가 설정되어 있었다. 지난해 2월13일부터 올해 6월20일까지 설정된 임차권등기 건수는 총 34건이다. 등기부등본상, 임차권등기 설정액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반환 전세보증금만 도합 23억4310만원이다. 임차권등기가 설정되지 않은, 아직 법적 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금액은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지만, 임대인 곽씨와 중개사 김씨는 오히려 임차권등기를 한 임차인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중개사 김씨는 “어떤 임차인은 자기만 생각하고 임차권등기 명령을 신청한다. 내가 하지 말라고 그랬다. 임차권등기를 다 해버리면 전세자금 대출이 안 나오고 집주인이 감당이 안 된다. 집주인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내가 부동산을 20년 동안 하면서 (얻은)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하나의 노하우다”라고 말했다.
임대인 곽씨의 (차명) 소유 다가구주택 중 I 다가구주택만 유일하게 임차권등기가 설정돼 있지 않다. 중개사 김씨는 “I 다가구주택 임차인에게 임차권등기 명령이 답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설득했다. 방법을 제시한 거다. I 다가구주택은 (올해 4월에도) 새로운 임차인을 뽑아서(중개해서) 전세금을 반환해줬다”라고 말했다. 참고 기다리면 다른 임차인을 들일 수 있고, 그들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아 돌려받을 수 있다며 설득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전히 곽씨 (차명) 소유 주택이 이 지역 임대차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사IN〉 취재 결과, 중개사 김씨가 중개하는 곽씨 (차명) 소유 주택이 임대 매물로 소개되고 있었다. 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는 7월8일 현재에도 중개사 김씨의 이름으로 ‘애완동물과 함께, 혼자 살기 좋은 집입니다’, ‘월세도 가능합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I 다가구주택 매물이 전세로 올라와 있다.
일부 임차인들은 ‘애초에 너무 높은 가격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고 있다. 곽씨가 차명으로 소유한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한 임차인은 전세금 대출 이자를 곽씨가 책임지는 조건으로 보증금 반환 기일을 한 차례 더 연장했다. 8000만원에 전세 임대차 계약을 맺은 한 임차인은 “현재 공동주택 공시가격(1400만원)과 전세보증금 차액이 6600만원으로 너무 크다. 대항력을 갖고 경매에 내놔도 온전히 전세금을 돌려받기 힘들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어떻게든 임대인 사정을 봐주면서 잘 해결하려고 눈물을 머금고 연장을 거듭하고 있다. 임대인을 신뢰해서가 아니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다”라고 말했다.
이재형씨가 사는 다가구주택은 법률상 단독주택이지만 한 건물에 여러 가구(최대 19가구)가 살고, 세입자들의 우선순위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선순위로 은행 대출을 담보하는 근저당권이 있다면, 은행 대출 채권이 1순위다. 그다음 세입자들의 확정일자 순서에 따라 최대 20순위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그래서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들어가기 전에는 은행 대출 채권액과 함께 먼저 사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선순위 전세금) 규모를 꼭 알아야 한다.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전세금보다 우선순위가 앞선 경우도 있어 납세증명서도 확인해야 한다.
김태근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다세대주택의 경우, 근저당권과 전세금이 주택 매매 시장가격보다 클 때 전세사기가 성립된다고 설명한다. 다가구주택 전세사기는 선순위 전세금의 합계를 감춘 채, 근저당권과 전세금 합계가 주택 시장가격을 초과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이재형씨 전세계약서에는 ‘근저당권 설정과 세대별 보증금 내역을 확인 후 계약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지만, 이씨는 그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인 곽씨는 자신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 상황이 ‘전세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곽씨가 세대당 2500만~3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기 때문에 시세가 올라 ‘깡통 전세’가 아니라는 논리다. 곽씨의 계산법은 이렇다. “A 다가구주택을 7억5000만원(근저당권 5억3800만원)에 싸게 매입했다. (매입가에 더해) 취등록세에 인테리어 비용까지 14억원이 들었다. 계산을 해보면 매매가가 실질적으로 18억원 정도 된다. (A 다가구주택) 전세금이 10억~11억원 정도니까 전세금 다 해도 여기에 못 미친다.”
임차인들을 대신해 임대인 곽씨를 경찰에 고발한 이하늘 변호사(법무법인 대륜)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 5월 이하늘 변호사는 임대인 곽씨와 곽씨의 모친, 중개사 김씨를 전세사기(사기 및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변호사는 “(매매가에서 근저당권을 제외하면) 소유권 취득일인 2020년 11월경 건물의 실제 가치는 2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미 A 다가구주택은 전세금을 전액 담보할 수 없는 소위 ‘깡통 건물’이다.”
임대인 곽씨는 여전히 자신이 전세금 상환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H 건물에서 대출 약 70억원이 나올 예정이고, 현재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건 일시적인 자금 경색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중개사 김씨의 말에 따르면, 곽씨는 다른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지난 4월에도 전세 계약을 이어갔다. 중개사 김씨는 〈시사IN〉에 “임대인이 아예 무일푼이면 나도 (전세금 반환) 장담을 못한다. 하지만 아직 0원은 아니다. 조금 있는 돈 가지고 수많은 세입자들 이자 정도는 줄 수 있다. 근데 목돈 6000만원, 7000만원을 주기에는 가지고 있는 돈이 많지 않다. 그래도 (곽씨가) 노력하고 있다. 집주인이 자기 자본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대인 곽씨는 현재 재판에서 패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4월 A 다가구주택에 임차권등기를 설정했던 임차인 조 아무개씨(31)는 곽씨를 상대로 한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1월17일 전주지방법원은 임대인 곽씨에게 A 다가구주택 세입자 조씨의 전세금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하는 동안 전주에서 대전으로 일터를 옮긴 조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탓에 집을 옮기지 못해 3개월 동안 전주에서 대전까지 매일 출퇴근하기도 했다. 조씨 아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생돈이 떼이는 거다.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라고 말했다.
곽씨 (차명) 소유 주택에 사는 임차인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례도 나왔다. 전북도청 주택건축과 관계자는 “올해 초 B 다세대주택 전세사기 피해 신청이 1건 들어왔고, 피해자로 인정됐다. 5월 말 A 다가구주택에서도 2건이 접수됐는데 아직까지 (피해자 인정 여부가) 결정된 건 없다”라고 말했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다음의 4가지 요건을 충족했을 때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인정된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임차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최대 5억원 이하), 다수의 임차인이 임차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그리고 임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의도가 있다고 임차인이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다.
곽씨가 차명으로 소유한 주택에 거주 중인 임차인 가운데에는 임대인 곽씨의 사정이 나아지기를 더 기다리겠다는 세입자들이 많다. 이원호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대표적 전세사기범인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도 재판에서 (임대인 곽씨처럼) ‘자기는 사기를 치려던 게 아니다. 지금 경기 상황 때문에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일시적으로 발생한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세입자들은 ‘내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맞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바뀐 제도에 의해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은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전북도청 주택건축과 관계자는 “일단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우리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하는 요건 중에 임대인 수사가 개시됐는지 여부를 본다. 수사 개시 여부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전북경찰청은 6월13일부터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시사IN〉이 등기부등본 확인과 탐문, 각종 취재 과정을 통해 확인한 곽씨의 (차명 소유) 주택 건물만 12채(183가구)다. 타인 명의로 건물을 구입하는 만큼 〈시사IN〉이 자체적으로 확인한 건물 외에도 곽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주택이 더 있을 수 있다.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현재 사건을 취합하고 있다. 피해 규모를 파악해 신속하게 수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재형씨는 “전세금 반환청구 소송을 넣은 지 6개월이 됐는데 아직도 기일이 안 잡혔다. 속이 타고 답답하다”라고 했다. 이씨와 인터뷰한 지 일주일, 이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기자님, 혹시 전세사기 피해 신청 어디서 하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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