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2025-01-08
평택시 민간 RPC 대금 미지급
농가 영농 계획 못세워 발동동
업체 “설 연휴전까지 지급” 약속
최근 경기 평택시 청북읍 율북리의 A미곡처리장 앞. 이른 아침임에도 입구엔 대여섯명이 몰려 있었다. 이들은 업체 대표를 만나겠다며 온 벼농가였다. 대표와 농가 사이에선 이따금씩 고성이 오갔다. 지난해 가을 이곳에 벼를 맡겼는데 2개월이 훌쩍 넘도록 대금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여기에 벼를 맡긴 게 지난해 10월24일이에요. 보통 다음날 정산하거나 늦어도 3일 안에 해주는데 여태껏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하루하루 피가 마릅니다.”
평택시 오성면에 사는 박은성씨(76)는 답답한 마음에 아내와 함께 이곳에 발걸음했다. 그는 40여년간 평택에서 농지를 임차해 벼농사를 지어왔다. 지난해 5만3000㎡(1만6000평) 규모의 임차 논에서 땀 흘려 일했지만 대가를 받지 못해 올해 영농 계획을 세울 엄두도 못내고 있다.
“오늘만 여기 미곡처리장을 찾은 게 아니에요. 10차례는 족히 넘을 겁니다. 전화는 30∼40통은 했을 것이고요. 그때마다 ‘며칠 뒤에 꼭 돈을 주겠다’며 약속하기에 믿고 기다리다 해를 넘겨버렸어요.”
그가 맡긴 건조 벼는 2만1600㎏ 으로 금액으로만 4100만원이 넘는다. 그간 윽박지르기도 하고 읍소하기도 하면서 500만∼1000만원씩 여러차례에 걸쳐 받았지만 아직도 1300만원의 미정산금이 남아 있다. 다른 농가도 받을 돈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농가의 악몽은 다른 곳보다 값을 더 쳐주겠다는 업체의 말에서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피해농가는 “40㎏ 기준으로 다른 곳보다 2000원씩 더 얹어서 정산해주겠다는 말에 주저 없이 A미곡처리장에 맡겼는데 이렇게 발등이 찍힐 줄은 몰랐다”면서 “정산일자를 계속 미루고 있으니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지역사회에서는 ‘해당 업체의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평택에서 벼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한 트럭 기사는 “이 미곡처리장이 농가에게 제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2023년부터 나왔다”면서 “그래서 가까운 지인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인근 다른 미곡처리장의 관계자는 “지역쌀 도매상이 연이어 부도가 나면서 A미곡처리장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도매상 한곳에서만 떼인 돈이 4억원이 넘는다는 소문도 돈다”고 말했다.
A미곡처리장은 경영난이 일시적이라 농가 미수금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업체 대표는 “지난해 자연재해가 극심해 수율이 65%대로 떨어진 데다 대출이 막혀 도산한 도매업체가 많아 자금 흐름이 경색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우리가 받을 미수금이 이달초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어 늦어도 설 연휴 전까지 최우선으로 농가들에게 정산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업체의 이러한 해명에도 농가와의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박씨는 “해당 업체가 수차례 한 약속을 깨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면서 “우리 같은 선량한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게 ‘경찰 고소’를 포함해 법적 책임을 물을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는 이같은 미지급문제에 대응하려면 서면 계약부터 꼼꼼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채원 법무법인 대륜 수석변호사는 “단골 업체라고 하더라도 거래 때마다 계약서를 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계약서에는 대금 지급 조건·기한과 이를 어길 시 발생하는 위약금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 법적 분쟁 때 중요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 농산물 납품과 대금 지급 시점을 일치시키는 거래문화가 정착되도록 정부에서 지급보증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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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값 높게 쳐주겠다”…약속해놓고 정산은 나몰라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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